#20. 청춘 겨울방학 근처의 대학가는 흡사 죽은 도시 같았다. 여름방학보다 겨울방학은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음력설 등 큰 일정들이 많아선지 원룸촌도 주변 술집들도 평소의 복작스런 분위기처럼 생기가 돌지 않았다. 1학년 내내 실속 없는 만남만 이어간 우진과 다니엘이 아니면 딱히 만날 사람이 없는 지훈은 마지막 발표 프로젝트까지 마쳐 본격적인 방학을 맞이한 오...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소리에 감긴 눈으로 모든 신경은 청각에 집중시켰다. 오늘부터 한 달 간 소영은 세미나 참석차 폴란드를 갈 예정이었다. 쇼팽이 폴란드 사람이었던가. 사실 별 관심은 없었다. 다만 출국준비를 하는 소영은 지금 매우 기분이 좋다는 걸 그녀의 허밍소리로 알 수 있었다. 결혼하고 처음 들어보는 그녀의 콧노래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휴일 오...
달라진 건 없었다. 해는 동쪽으로 떠서 서쪽으로 지고 아침이면 새들의 지저귐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고 여름의 찌는 듯 한 더위는 오히려 그 정도를 더했다. 존재의 상실에서 오는 허무함과 그리움은 남은 사람들의 몫일 뿐 떠난 사람은 말이 없다. 하지만 남은 이들도 그 하루를 버티고 살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보면 가슴에 난 상처의 흔적은 조금씩...
지훈과 나는 그 날 이후로 출근 메이트가 됐다. 딱 10분이었지만 난 그 시간을 위해 알람을 맞추고 세수를 하고 타이와 향수를 골랐다. 지훈의 학교까지 가는 데까지는 꽤 많은 건널목을 지나야했는데 평소에는 잦은 신호 걸림에 혼잣말로 욕설을 내뱉던 내가 일부러 빨간불에 멈춰서길 기대하며 엑셀과 브레이크를 조절했다. 그런 내 정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훈은 조잘...
#18. 청춘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30분까지. 정확히 12시간 30분 동안 두 사람은 2시간의 쪽잠을 포함해 세 번의 정사와 다섯 번의 오르가즘을 동반한 사정으로 긴 밤의 역사를 마무리 지었다. 청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시기였다. 몸정이란 참 무서운 것이었다. 다니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차를 몰고 지훈의 학교 앞으로 마중을 왔다. 명분은 한동...
[녤윙] #3. 나쁜 피 제 엄마를 닮아서 아무한테나 잘 안기나봐. 냉소적인 말투로 소영은 지훈을 평가했다. 소영의 친어머니는 3년 동안 유방암 말기로 치료를 받다 소영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조용히 돌아가셨다고 했다. 원체 밖으로만 돌던 아버지와 자주 아팠던 어머니 사이에서 부부관계의 애틋함은 어린 시절 부터 소영에게 느껴보지 못한 개념이었다. 대학 졸...
[녤윙] #2. 나쁜 피 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확실히 돈은 불가능의 변수를 줄여준다. 남산이 보이는 호텔 그랜드 홀은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안의 정계 사람들과 처가의 재계 사람들로 가득 채울 수 있게 자리를 내어줬다. 뭐든 초호화를 좋아하는 어머님과 소영은 그 부분에서 서로 죽이 잘 맞았다. 덕분에 나는 결혼준비에서 존재감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21세기. 상상했던 일들이 실현되고 작았던 것들은 그 크기를 키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의 인식을 도와주며 역으로 컸던 것들은 작아져 인간의 무게를 덜어주는 이 시대. 그래도 변하지 않는게 있다면 젊음의 푸릇함이었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 죽었던 것들도 깨어나는 그 때 또 하나 변치 않는 게 있었는데 그것은 처음이 주는 두려움이 깔린 설렘이었으니 청춘...
[녤윙] #1. 나쁜 피 (N’s Words) 아내는 조용하고 이성적이었다.애초에 결혼이란 건 우리집안에서는 전략적 제휴관계 정도의 가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한 것과 같이 대물림되는 가풍이라고나 할까. 물론 애정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좋아 못사는 사람이 아닌 서로에게 부족한 걸 채워줄 수 있는 집안과의 결합이 결...
[점심은 학식] 4월의 교정은 꽃 천지였다. 때늦은 눈발처럼 날리는 벚꽃 잎이 봄비를 맞아 떨어지면 아마 개나리와 철쭉도 절정에 달할 것이다. 다른 봄꽃보다 늦게 핀 벚꽃은 보다 일찍 져버렸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기다려지는 것이겠지. 지훈은 떨어지는 벚꽃을 맞으며 학생식당으로 이동하면서 다니엘에게 문자를 남겼다. 용건만 간단하게. 하지만 절대 잊지는 않았...
오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도 결국은 온다. 시간의 흐름은 지구의 자전만큼이나 거부할 수 없는 만고의 진리였다. 전국의 수험생들에게는 수능시험이 가장 곤란하고 괴로운 그 날이었지만 동시에 참으로 모순적이게도 빨리 보내버리고 싶은 기다려지는 그 날이기도했다. 최강 한파를 피해 시험 날짜를 매년 조금씩 앞당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추웠다. 초겨울의 스산한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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