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약점은 다정함이었다. 완벽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다정함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다니엘은 다정했다. 내 인생에는 허용되지 않은 관계라고 생각될 정도로. 첫 눈에 호감을 갖고 조심스러운 끌림에 순응해버린 순간. 이미 나는 겉잡을 수 없는 속도로 앞만 보고 돌진하고 있었다. 성별도 지위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속에서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던 ...
장담할 수 있었다.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을.지훈은 천성이 사람 손을 타는 스타일이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도 좋다는 내 허락에도 옆을 떠나지 않았다. 먹고 난 자리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 치웠고 내 말에 맞장구 치고 오히려 질문도 던지며 분위기를 맞추려 애를 썼다.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지훈과 나는 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게 있다. 내가 지훈을 만난 일이 그렇고 사랑하게 된 일 역시 그랬다. 끔찍한 사고가 그랬고 우리의 재회가 그랬다. 지훈에게 잊혀진 내가 그랬으며 다시 함께 있는 우리가 그랬다. 1퍼센트 가능성에 의지해 살았다면 나는 그다지 치열하게 살아내지 않았을 것이었는데 나는 어느새 소수점 한 자리수의 확률에도 기대를 걸며 하루하루를 ...
지훈이 돌아왔다. 2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병원에서 퇴원하고 돌아간 집은 그야말로 공허 그 자체였다. 내 짐만 그대로 둔 채 소영과 지훈의 흔적은 티끌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훈의 짐은 처가에서 정리해 본가로 옮기고 소영의 짐은 어머니께서 손수 정리했다고 하셨다. 내 인생에서 두 사람이 흔적 없이 깔끔하게 도려내졌다. 애초에 없던 사람인 것처럼. “...
면접이랄 것도 없었다. 교수님 백이 이 정도까지 막강할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훨씬 호감형의 훤칠한 모습을 한 강변호사님은 1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내 손에는 아직 전달되지 못한 음료수 박스가 들려있었고 쭈뼛거리며 서 있는 내 옆에 커피를 두 잔 들고 와 자리에 앉기를 권유했다. “저 이거..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음료...
나는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에 가서도 꾸준히 심리치료를 받겠다는 엄마와의 약속이 조건이었지만 예전보다 엄마의 고집은 꺾기 수월하게 변해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뱃속에 있는 나와는 20살 차이가 나는 동생에게 감사해야할 지도 몰랐다. 엄마의 애착은 나에게서 새아버지에게로, 이제는 뱃속의 아이에게로 향했고 따라서 엄마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는 일은 더 이상 내게 ...
여름의 바다를 곁에 둔 지역은 현지인보다 이방인들이 더 많은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수영복에 수건만 걸친 채 돼지국밥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는 사람들과 밤에는 몇 분 간격으로 들리는 폭죽 소리에 하루를 일상으로 보내는 거주자들마저도 잠시 환상 속에서 시간을 빠르게 보내게 했다. 평소에도 한적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휴가철에는 더더욱 번잡스러워지는 해운대 모래사...
“박앵커. 지훈아. 갈 수 있겠어?” 원체 술에 약한 지훈이었는 데다가 눈물 쏙 빼며 마친 소주는 사람 하나 인사불성으로 만드는데 순간이었다. 짬뽕이 짜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종국에는 으앙하고 울어버리는 지훈을 겨우 달래고 민현은 대리를 두 명 호출했다. 차를 가져오지 말 것을 주말에 차를 써야 해서 두고 갈 수도 없었고 제가 바래다주자니 지...
내 것이 꼭 내 것이었던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이미 인생을 한 번 살다 오신 분과 같이 정답이 적혀있는 문제집을 풀 듯 나를 키우셨다. 아드님. 이런 옷은 입는 게 아니에요. 아드님. 그런 친구랑 놀면 안 돼요. 아드님. 길거리에서 왜 음식을 먹어요. 불결하게. 심지어 나는 외동이었는데 이미 수백 명의 아이를 양육한 듯 그렇게 나를 키우셨다. ...
저녁까지 해결하고 오려던 두 사람의 계획은 왠지 불편해 보이는 지훈의 들썩임과 금방 지쳐 보이는 경화로 인해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됐다. “우진임마가 애아빠가 된다는 게 말이 되나. 이게 뭔 일이고.” 서울 집으로 가는 내내 운전대를 잡고 끊임없이 조잘대는 다니엘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른 채 지훈은 미세먼지 때문에 차마 열지 못한 창문을 향해...
아래로 내려갈수록 차량은 줄었다. 속도를 높이고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장인의 생신이었다. 상견례이후 처음으로 다시 가족 전부가 모이는 자리였다.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자가운전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가 셋이었기 때문이었다. KTX 도 항공기의 국내선의 비즈니스석도 지훈은 홀로 앉혀야했는데 그게 내게 썩 내키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
사무엘 울만이 그랬다. 청춘은 시기가 아니라 마음이라고. 하지만 말이 좋아 마음먹기에 달려있지 이 마음이란 녀석은 생각보다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마음이 변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청춘의 몸과 마음을 자꾸만 쥐고 흔들었다. 아직은 의지와 열정이 10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시기였지만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누군가에게 월급 받는 직업에 종사한다는 건 ...
J의 이야기는 녤윙으로 시작합니다.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